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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되지 않는 유토피아, 영화 《브루탈리스》

by zed 2025.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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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탈리스트: 야만적 우아함 속의 역사적 트라우마와 건축적 서사

 

브루탈리스트(The Brutalist)는 브레이디 코베이가 감독과 모나 파스트볼이 공동 각본을 맡은 2024년 개봉작으로,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헝가리 출신 건축가 라즐로 토스의 삶을 통해 전후 미국 사회의 이민자 경험과 자본주의적 권력 구조를 해부한다.

 

1947년부터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건축물의 물리적 견고함과 인간 정신의 취약성을 대비시키며, 브루탈리즘 건축 양식을 서사적 메타포로 활용한다. 아드리언 브로디의 연기는 라즐로의 내적 고뇌와 외부적 갈등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며, 영화는 2024년 베네치아 영화제 은사자상 수상과 아카데미 10개 부문 노미네이트를 통해 예술적 완성도를 인정받았다.


브레이디 코베이: 트라우마의 고고학자

감독의 정체성과 연출 철학

브레이디 코베이(1988년생)는 배우 출신 감독으로, 미스테리어스 스킨(2004)과 멜랑콜리아(2011)에서 보여준 내면의 상처를 가진 인물 연기가 그의 감독적 시각에 영향을 미쳤다. 그의 데뷔작 더 차일드후드 오브 어 리더(2015)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정치적 전체주의의 기원을 탐구했으며, 복스 룩스(2018)는 총기 난사 사건의 트라우마를 팝 아이콘의 생존기로 재해석했다. 코베이의 작품 세계는 "역사의 추악함이 영화적 재현을 통해 반복되며 현재화된다"는 믿음 위에 구축된다. 브루탈리스트에서 그는 건축물의 물리적 견고성과 이민자 정체성의 유동성을 대비시키며, "미국이라는 건축물"의 기반이 된 이민자 착취를 고발한다.

협업과 시각적 혁신

코베이는 장편마다 촬영감독 롤 크롤리와 작업하며 시각적 서사를 강화해왔다. 브루탈리스트에서는 1950년대 영화 현기증(1958)의 1.66:1 화면비를 차용해 당대의 클래식한 느낌을 재현하면서도, 디지털 카메라의 선명함으로 브루탈리즘 콘크리트의 질감을 생생히 포착했다. 이는 건축물의 거친 표면과 인물의 정서적 균열을 시각적으로 동기화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서사 구조: 콘크리트 층위의 붕괴

프롤로그: 자유의 여신상의 뒤집힌 그림자

영화는 라즐로 토스(아드리언 브로디)가 부헨발트 수용소에서 생존한 후 미국으로 이주하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뉴욕 항구에 들어서는 배 안에서 바라본 자유의 여신상이 거꾸로 비춘 그림자로 등장하는 장면은 미국 이민자의 꿈이 지닌 아이러니를 선취한다. 이 이미지는 영화 전반에 걸쳐 반복되며, "건축된 유토피아"와 "뒤틀린 현실"의 이분법을 상징한다.

1막: 필라델피아에서의 추락

라즐로는 사촌 아틸라(가이 피어스)의 가구점에서 일하며 건축가로서의 재기를 꿈꾼다. 그러나 아틸라의 아내 오드리는 라즐로를 "유럽에서 온 낡은 유물"로 취급하며, 결국 해리슨 반 뷰런(클라이언트 역)의 저택 리모델링 프로젝트 실패로 라즐로는 거리로 내몰린다. 이 과정에서 코베이는 1950년대 미국의 위선을 드러내는 세부적 장치들을 배치한다: 아틸라가 유대인 신앙을 버리고 가톨릭으로 개종한 사실, 오드리의 인종적 편견(라즐로를 "동유럽 야만인"이라 비하), 해리슨의 계약 위반 등.

2막: 콘크리트 속의 혈흔

3년 후, 헤로인 중독자가 된 라즐로는 흑인 동료 고든과 함께 노숙자 보호소에서 생활한다. 이 시퀀스에서 카메라는 브루탈리즘 건축물의 거대한 콘크리트 벽면과 라즐로의 초라한 신체를 교차 편집하며, 자본주의 시스템이 개인을 "인간 쓰레기"로 전락시키는 과정을 시각화한다. 해리슨의 재등장은 극적 전환점이다. 그는 라즐로를 자신의 새 프로젝트에 참여시키지만, 이는 착취의 연속일 뿐이다. 카라라 대리석 채석장에서의 강간 장면(해리슨이 라즐로를 성적·정신적 지배 하에 두는)은 권력 관계의 왜곡을 가장 충격적으로 묘사한다.

에필로그: 십자가의 역설

영화는 라즐로의 아내 에르제벳이 해리슨을 공개적으로 고발하는 장면으로 클라이맥스에 이른다. 이어지는 해리슨 가문의 붕괴와 라즐로 가족의 예루살렘 이주는 "희생자의 승리"가 아닌 "트라우마의 유산"을 암시한다. 마지막 샷에서 십자가가 거꾸로 비추는 이미지는 기독교적 구원 서사의 해체를 완성한다.


브루탈리즘 미학: 건축과 영화의 상호텍스트성

양식적 대응 관계

브루탈리즘 건축(1950-70년대)이 노출된 콘크리트와 기하학적 형태로 기능성을 강조한 것처럼, 영화 브루탈리스트는 "서사적 노출"을 핵심 기법으로 삼는다. 플롯의 각 층위(라즐로의 개인사, 가족 갈등, 건축 프로젝트)는 마치 콘크리트 블록처럼 조립되며, 클로즈업 쇼트를 최소화해 인물의 감정을 "구조물 뒤에 가린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캐릭터의 내면보다 그들을 둘러싼 사회구조에 집중하게 만든다.

실존 인물과의 대화

라즐로 토스는 실존 건축가 마르셀 브로이어(바우하우스 출신, 브루탈리즘 선구자)를 모델로 한다. 브로이어의 대표작인 바실리 의자가 영화 내 라즐로의 가구 디자인으로 등장하는 것은 역사적 리얼리티를 강화한다. 특히 1947년 필라델피아에서의 라즐로 실패는 브로이어가 실제로 미국에서 겪은 창의적 좌절(유럽 모더니즘과 미국 실용주의의 충돌)을 반영한다.

공간의 정치학

해리슨 반 뷰런의 저택 서재 리모델링 에피소드는 건축이 계급 권력의 연장임을 보여준다. 해리슨이 "사회적 침수(social sedimentation)"라 명명한 그의 건축 철학은, 하층민의 노동이 상류층의 문화적 자본으로 재편되는 과정을 은유한다. 이 프로젝트가 실패로 끝나는 것은 자본가의 예술 착취가 결국 자기 파멸을 초래함을 암시한다.


트라우마의 고고학: 이민자 서사의 재해석

아메리칸 드림의 해체

전통적 이민자 서사가 "고통 → 성공"의 이항대립을 따른다면, 브루탈리스트는 "고통 → 타락 → 잔존"의 3단계를 제시한다. 라즐로의 경우, 홀로코스트 생존자로서의 트라우마(1차 고통)가 미국에서의 착취(2차 고통)로 중첩되며, 결국 그는 건축적 열정 대신 헤로인에 의존하는 신체로 전락한다. 이는 아메리칸 드림이 "착취의 순환 구조"임을 폭로하는 서사적 선택이다.

인종 차원의 교차

흑인 동료 고든과의 관계에서 라즐로는 "이민자 내부의 계급화"를 체험한다. 고든이 노동 현장에서 받는 인종 차별을 목격하면서도, 라즐로는 자신의 백인 특권을 이용해 고든을 해고한다. 이 장면은 피해자-가해자의 이분법을 해체하며, 소수자 간의 연대가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서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준다.

성폭력과 젠더 역학

해리슨의 강간 장면은 단순한 개인의 범죄가 아니라 "제도적 폭력의 축적"으로 읽혀야 한다. 라즐로가 남성임에도 성적 대상화되는 것은, 권력 관계에서의 약자 위치가 젠더를 초월함을 강조한다. 이후 에르제벳의 고발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는 것은 가부장적 사회가 여성의 목소리를 체계적으로 억압하는 현실을 반영한다.


비평적 수용: 예술성과 대중성 사이

평단의 찬사

로튼 토마토 93% 신선도, 메타크리틱 90점을 기록한 이 영화는 "아드리언 브로디의 연기가 영혼의 진동을 일으킨다"(가디언)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1950년대 필름 누아르를 연상시키는 음영 처리와 롱테이크의 사용(에르제벳의 고발 장면)은 현대 영화미학의 클래시시즘으로 재해석되었다.

논쟁적 지점

일부 비평가들은 영화의 "과도한 서사적 야망"을 지적했다. 더 뉴요커의 리처드 브로디는 "역사적 알레고리에 매몰된 캐릭터 개발"을 비판했으며, 실제 건축 전문가들은 브루탈리즘의 정치적 함의가 충분히 탐구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 자체가 영화가 제기한 질문의 복잡성을 증명한다.


결론: 붕괴되지 않는 유토피아

 

브루탈리스트는 브루탈리즘 건축이 지닌 "잔혹한 아름다움"을 통해 20세기 트라우마의 다층성을 조명한다. 라즐로 토스의 개인사는 홀로코스트, 이민자 착취, 성적 폭력이라는 역사적 층위를 관통하며, 이 모든 것이 "미국"이라는 콘크리트 건축물의 기반이 되었음을 고발한다. 브레이디 코베이는 이 영화로써 관객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서 있는 땅은 얼마나 많은 고통의 층위로 이루어져 있는가?"

 

이 작품은 단순한 시대극을 넘어, 오늘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유럽의 난민 위기까지 연상시키는 현실적 공명을 이룬다. 콘크리트 블록 하나가 무너지지 않는 한, 그 아래 묻힌 울부짖음은 영원히 들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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