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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로 남은 옥스퍼드 졸업 축사, 절대 포기하지 말라(Never Give Up)

by zed 2022.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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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명문 옥스퍼드 대학.

이곳에서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한 졸업식 축사가 있었다.

 

위엄 있는 차림으로 담배를 물고 식장에 나타는 사람은 바로 윈스턴 처칠이었다. 청중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당대 최고의 총리인 처칠의 입에서 나올 멋진 축사가 무엇인지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절대 포기하지 말라! Never Give Up!"

처칠의 입에서 나온 축사의 첫마디는 바로 이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졸업식장을 꽉 채운 청중들을 돌아봤다. 졸업을 앞둔 학생들과 학부모 그리고 청중들은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처칠이 다시 말을 이었다.

 

Never,
Never,
Never,
Never,
Never,
Never,
Never Give Up!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

 

처칠은 무려 일곱 번이나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그리고 처칠은 단상에서 내려왔다. 그것이 축사의 전부였다. 그의 짧지만 묵직한 축사 뒤로 일순간 청중은 얼어붙은듯했다. 하지만 곧 처칠의 축사에 대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처칠의 인생

청중들의 저 박수는 어쩌면 짧고도 강렬한 축사뿐만 아니라 포기를 모르는 처칠의 인생에 대한 찬사였을지도 모르겠다. 귀공자로 컸을 것만 같은 윈스턴 처칠은 원래 팔삭둥이 조산아로 태어났다고 한다. 말더듬이가 심해 당시에는 장애우로 불렸고 학교에서는 늘 꼴찌를 도맡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덩치는 크고 성격을 쾌활해서 건방지다는 오해를 받았고 학적부에는 희망 없는 아이라고 평가되었다고 한다. 중학교 때에는 영어 실력이 부족해 낙제를 받아 3년이나 유급을 했다. 본인이 희망했던 캠브리지나 옥스퍼드에는 입학할 수 없어서 육관사관학교에 지원했는데 이곳마저도 두 차례의 재수 끝에 입학했다고 한다.

 

정치인으로 입문한 후에도 그의 인생은 장애물 투성이였다. 입문 첫 선거에도 낙선했고 이후 기자생활을 하다가 다시 도전해 당선되기도 했다. 

 

만약 내가 처칠이었으면 어디에서 포기했을까? 모두가 절망적으로 나를 표현하고 있고 내 인생에 실패만 가득한데 나는 과연 그처럼 나아갈 수 있었을까?

 

그런데 처칠은 느릿느릿하지만 꾸준히 해낸다.

 

절대, 절대,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던 그는 언어 장애를 극복하고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된다. 세계대전의 영웅이자 역사에 남는 위대한 정치인으로 자신의 이름을 새긴다.

 

이름 있는 정치인으로 중년이 된 처칠에게 가장 큰 시련은 2차 세계대전 당시였다고 한다. 영국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고 사라질 수도 있는 정말 긴급한 상황이었다. 같은 정당, 유권자라 하더라도 이런 상황에 모든 비난의 화살이나 책임에 대한 무게감이 처칠에게 얼마나 컸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수상이었던 그는 영국 의회에서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피와 흙과 눈물과 땀 이외에 내가 국민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국기를 내리고 항복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바다에서는 대양에서도 싸우고 해안에서도 싸울 것입니다.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처칠은 그의 말대로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포기를 모르는 열정 끝에 영국은 전세를 역전시키고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끄는데 기여하게 된다. 거의 삶에서 포기는 없었다.

 

처칠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가슴속의 무언가가 타오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당장 나부터 포기하지 않고 한걸음씩 나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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