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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권력에 대한 현대적 성찰, 영화 《콘클라베》

by zed 2025.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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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선출의 정치적 암투와 인간적 갈등을 그린 스릴러 『콘클라베』

 

2024년 개봉한 『콘클라베』는 교황 선출 과정을 배경으로 권력 투쟁과 인간적 약점을 날카롭게 조명한 정치 스릴러다. 에드워드 버거 감독의 연출 아래 랄프 파인즈, 스탠리 투치, 이사벨라 로셀리니 등이 압도적인 연기로 종교적 권력 구조의 이면을 파헤친다. 영화는 신성한 의식 뒤에 숨은 인간의 욕망을 계층적 서사로 풀어내며, 현대 가톨릭 교회가 직면한 도덕적 딜레마를 예리하게 성찰한다.


영화 『콘클라베』의 기본 정보

제작 배경과 주요 스태프

『콘클라베』는 로버트 해리스의 2016년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2024년 12월 국내 개봉했다. 제작비 4,000만 달러로 제작된 이 영화는 영국과 미국의 합작 프로젝트로, 『서부 전선 이상 없다』(2022)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에드워드 버거가 메가폰을 잡았다. 각본은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2011)의 피터 스트라우헌이 맡아 원작의 복잡한 정치적 암투를 영화적 긴장감으로 재구성했다.

 

주요 출연진으로는 교황 선출을 주관하는 로렌스 추기경 역의 랄프 파인즈, 진보적 성향의 벨리니 추기경을 연기한 스탠리 투치, 수녀원장 아그네스 역의 이사벨라 로셀리니가 협업했다. 특히 필리핀 출신의 젊은 추기경 베니테즈 역을 맡은 카를로스 디에스의 연기는 영화의 핵심 반전을 이끄는 장치로 기능한다.

기술적 특성과 흥행 성적

촬영은 이탈리아 로마의 씨네시타 스튜디오에서 70일간 진행되었으며, 실제 바티칸의 시스틴 성당을 1:1로 재현한 세트가 사용되었다. 영화의 시각적 아이덴티티를 책임진 미술감독 클라우디아 카스텔리는 성당 내부의 프레스코화를 직접 수작업으로 복제해 종교적 숭고함과 음모의 어두움이 공존하는 공간을 구축했다.

 

음악은 『덩케르크』(2017)의 한스 짐머가 맡아 그레고리오 성가와 현대적 오케스트라를 혼용한 사운드트랙을 제작했다. 특히 추기경들의 투표 장면에서 종소리와 합창이 교차하며 신성함과 불안감을 동시에 전달하는 음향 설계는 아카데미 음향효과상 후보에 올랐다.

 

흥행 측면에서는 전 세계 1억 2,000만 달러의 수익을 기록하며 독립 영화로서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고, 2025년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남우주연상(랄프 파인즈), 각색상 등 8개 부문 후보에 올라 3관왕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에드워드 버거 감독의 연출 철학

현대사를 관통하는 정치적 서사

에드워드 버거(1970년생)는 오스트리아-스위스 이중국적을 가진 감독으로, 냉전 시대의 갈등을 다룬 『잭』(2014)으로 베를린 영화제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 세계는 권력 구조의 모순개인의 도덕적 선택이라는 축을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에서 전쟁의 부조리를 신랄하게 비판한 것처럼, 『콘클라베』에서는 종교적 권위가 인간의 욕망에 어떻게 휘둘리는지를 탐구한다.

 

버거는 인터뷰에서 “교회는 신성함과 세속적 권력이 공존하는 모순적 공간”이라 지적하며, 카메라 워크를 통해 이 대비를 시각화했다. 예를 들어, 시스틴 성당의 천장화를 비추는 광활한 와이드 샷과 추기경들의 암약을 클로즈업하는 교차 편집은 신성과 속물성이 병존하는 공간을 상징한다.

배우와의 협업 방식

버거는 배우들의 즉흥 연기를 유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랄프 파인즈는 “대본의 30%가 현장에서 재작성되었다”고 밝힐 정도로, 추기경들의 대립 장면에서 자연스러운 감정 표현을 이끌어냈다. 특히 로렌스 추기경이 베니테즈의 비밀을 알게 되는 클라이맥스 씬에서 파인즈의 7분 장면은 NG 없이 일관 촬영되어 영화의 임팩트를 극대화했다.


영화의 서사 구조와 핵심 줄거리

교황 선출 과정의 계층적 갈등

교황의 갑작스러운 서거 후, 전 세계에서 모인 118명의 추기경들은 바티칸으로 소집된다. 선출을 주관하는 로렌스 추기경(랄프 파인즈)은 엄격한 규율로 회의를 통제하려 하지만, 각기 다른 야망을 가진 인물들이 음모를 꾸민다.

  • 트렘블레이 추기경(존 리스고): 현 교황의 급진적 개혁을 비판하며 전통 수호를 주장하는 보수파 리더.
  • 아데이에미 추기경(루시언 마사마티): 아프리카 최초의 교황 등극을 노리는 야심가.
  • 테데스코 추기경(세르지오 카스텔리토): 동성애자 성직자 숙청을 공약으로 내세우는 극우 성향 인물.

투표가 진행될수록 후보들은 상대방의 비리를 캐내는 검은 홍보전을 펼치고, 로렌스는 필리핀에서 비밀리에 서품된 베니테즈 추기경(카를로스 디에스)의 존재를 발견한다. 그의 인터섹스 정체성이 드러나며, 교회의 성차별적 전통과 진보적 포용성의 충돌이 첨예화된다.

파국을 향한 서스펜스

영화의 전환점은 세 번째 투표 직후 발생한 시스틴 성당 폭발 사건이다. 이 사고로 트렘블레이가 사망하고, 로렌스는 교황청 내부의 음모론에 휘말리게 된다. 범인으로 지목된 테데스코가 자살하는 가운데, 베니테즈가 로렌스에게 “진정한 개혁은 체제 내부의 부패를 청산하는 것”이라고 설파하는 장면은 종교적 이상주의와 현실 정치의 괴리를 드러낸다.

 

결말부에서 로렌스는 모든 음모의 배후가 아그네스 수녀(이사벨라 로셀리니)였음을 알게 된다. 그녀는 전 교황의 사생아를 숨기고 있었으며, 교회의 위선을 폭로하기 위해 고의로 혼란을 조장한 것이다. 최종적으로 로렌스가 교황으로 선출되지만, 그는 즉위식 직후 모든 권력을 포기하고 은둔하는 충격적인 결말로 관객의 여운을 자극한다.


영화가 제기하는 철학적 질문들

신앙 vs. 권력: 종교 기관의 이중성

『콘클라베』는 가톨릭 교회의 계층 구조가 신앙의 순수성정치적 이해관계 사이에서 어떻게 균열을 일으키는지 탐구한다. 추기경들의 대사 “가장 위험한 자는 교황이 되고자 하는 자”(The most dangerous man is he who desires to be Pope)는 권력에 대한 욕망이 신성한 사명을 타락시킨다는 아이러니를 강조한다.

 

이러한 메시지는 현실의 교회 사건과 병치되어 공명한다.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출 당시 금융 개혁을 둘러싼 추기경들의 파벌 다툼, 2022년 독일 가톨릭 교회의 아동 성추행 은폐 사건 등이 영화의 서사와 유사성을 보인다. 버거 감독은 “교회의 부패는 특정 인물의 문제가 아닌 제도적 모순”이라고 인터뷰에서 지적하며, 영화 속 추기경들을 통해 조직의 병리를 진단한다.

젠더와 다양성: 포용의 한계

베니테즈 추기경의 인터섹스 정체성 노출 사건은 영화의 핵심 도발이다. 교회법 제1041조는 “생리적 결함”이 있는 자의 성직 서품을 금지하지만, 베니테즈는 전 교황의 특별 허가로 서품받았다는 설정은 현대의 성소수자 문제를 환기시킨다.

 

이 인물은 “하느님의 창조물은 모두 완전하다”는 대사를 통해 교회의 배타적 규범을 비판하며, 관객에게 포용성의 신학적 재해석을 요구한다. 그러나 결말에서 그가 추방당하는 것은 현실 교회가 직면한 구조적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이를 통해 진보적 이상과 전통적 규율 사이의 간극을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에드워드 버거의 미학적 선택

클로스트로포비아적 공간 연출

버거는 교황 선출 회의가 진행되는 시스틴 성당을 폐쇄적 공간으로 재현해 극도의 심리적 압박감을 조성한다. 2.35:1 시네마스코프 화면 비율은 좁은 회의실의 답답함을 강조하며, 천장의 『최후의 심판』 프레스코화는 추기경들을 내려다보는 신의 시선을 암시한다.

 

조명 디자인에서도 계급을 차별화했다. 로렌스의 얼굴은 상층부 창문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에 비춰지지만, 음모를 꾸미는 인물들은 어두운 그림자 속에 위치시켜 도덕적 이중성을 시각화했다. 이러한 연출은 베르너 헤어조크의 『피츠카랄도』(1982)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장르 혼종의 서스펜스

버거는 정치 드라마, 종교 서사, 심리 스릴러의 요소를 층위 있게 결합했다. 예를 들어, 추기경들의 투표 장면은 『12명의 성난 사람들』(1957)의 토론 장면을 오마주하며, 각 인물의 표정과 제스처를 슬로우 모션으로 보여주어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반면, 아그네스 수녀의 배후 조종 행각은 『셰이프 오브 워터』(2017)의 정체성 은유와 닮아 있으며, 성당 폭발씬에서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2010)과 유사한 실용적 특수 효과가 사용되었다.


결론: 종교 권력에 대한 현대적 성찰

『콘클라베』는 신성한 의식의 이면에 도사린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예리하게 해부한 작품이다. 에드워드 버거는 종교 영화의 클리셰를 탈피해, 교황 선출 과정을 미시적 권력 투쟁의 연극으로 재해석함으로써 관객에게 도덕적 성찰을 유도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로렌스가 성 베드로 광장을 등진 채 사라지는 모습은 개혁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암시하는 열린 결말로 해석된다. 이 작품은 종교와 권력의 관계를 탐구하는 현대 영화사에서 『다빈치 코드』(2006)와 『사일런스』(2016)의 정신적 후계자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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